나가도 너무 나갔던 영화 <나랏말싸미>

Posted by 톰하 3H의 신나는 인생
2019. 8. 15. 09:05 잡담/영화리뷰

 

도대체 이 영화 어디가 잘못됐기에 이리도 많은 논란을 겪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서 보게 된 영화, 나랏말싸미.

 

영화 <나랏말싸미>

이미지 다음 영화

 

 출연 : 송강호, 박해일, 고 전미선

 

 러닝타임 : 110분

 

나랏말싸미 1차 예고편 - 출처 다음 영화

 

<나랏말싸미> 1차 예고편

1차 예고편

movie.daum.net

 

나랏말싸미 2차 예고편 - 출처 다음 영화

 

<나랏말싸미> 2차 예고편

2차 예고편

movie.daum.net

 

 영화 평점

 

- 네이버 영화 : 3.47점 (13,277명 평가)

 

- 다음 영화 : 4.5점 (3,537명 평가)

 

- IMDB : 5.6점 (14명 평가)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영화 자체로는 송강호 씨, 박해일 씨 연기가 무척 훌륭했고 간간히 살짝 미소 짓게 만드는 훈훈한 장면들까지 더해져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옛 시대 메신저 (?) 초성으로 바닥에 글 써서 전달하는 장면은 귀여웠어요. <ㅋㅋㅋ, ㅂㄱㅅㄷ>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을 지울 수 없는 건 역시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는 세종 대왕의 가장 큰 업적을 신미 스님의 것으로 만들려는 너무나 종교적 색채가 들어난 영화였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중국과 다른 국가 왕조에 비해 굉장히 장수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대부분 국가를 건설하면 500년 이상 장수하는 데 다른 어느 나라를 봐도 500년 가까이 장수하는 나라가 흔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역사적 배경에는 한 국가의 종교 및 사상이 건국 초기에서 오랜 기간동안 그 자체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이 정치 및 종교적 기반 아래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조선 초기, 명과의 사대는 그렇게 굴욕적이지도 고려말에 나타난 성리학이 조선의 국교 및 사상의 토대가 됐을 때만해도 그렇게 썩고 낡아빠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불교야 말로 건강했을 때의 모습을 잃은 채 타락의 끝을 보여주어 유교의 탄생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죠.

 

그런데 조선 시대 초기, 그것도 조선이 가장 빛나던 시기, 막 사상과 종교로서의 건강함을 발하고 있던 세종 때의 치세마저도 깎아내리며 불교의 우월성을 강조하려고 했다면 불교가 가진 지금의 포용의 제스처는 가식적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도 들게 만듭니다.

 

 

세종대왕을 연기하는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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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지친 세종대왕을 보며 조선 말기의 병든 유교 국가를 연상하게 만든 영화, 나랏말싸미.

 

신미 대사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 지는 이해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고승을 앞세워 한글 창제를 다루고 싶었다면 우선 건강함을 잃고 스스로 위기에 빠진 불교의 자성은 어디에도 없고 위태로운 조선, 썩어빠진 조선이라는 이미지를 덮어 씌어 '좋은 나라나 만들라'며 훈계하는 고승앞에 무력한 세종 대왕을 보여주다니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닌가요?

 

 

영화는 픽션이지 다큐가 아니기에 협업 정도로 밀고 갔다면 역사가 고증해야 할 사실이 어디에 있던 간에 어느 정도이해 할 수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조선 초기의 성리학은 훈구학파로 왕권 강화에 힘을 보태던 시절이었고 태종 이방원은 시대의 영웅인 아버지 태조와 맞서 형제의 난을 일으키고 자신의 아내 가문과 세자들의 사돈들 및 막강한 신하들이 자신의 아들인 세종의 치세를 망치지 않게 모두 숙청할 정도로 왕권 강화에 집착하던 왕이었습니다.

 

엄청난 피를 흘리며 자식의 치세를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떠난 사람으로 세종 대왕의 유일한 어두운 그림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왕이었습니다.

 

왕권이 강했던 시대에 반해 신권 통치인 유교는 조선 중기 이후 사림들에 의해 주창되었고 성종 아들, 연산군의 패악과 폭정을 경험한 뒤 왕권 강화에서 신권 강화로 흐름이 바뀌던 시절에나 가능한 것인 데 영화 내내 흐름은 조선 말기 병든 조선을 그린 듯 유교가 무슨 전염병이나 몹쓸 병으로 그린 게 너무 거슬렸어요.

 

 

이제 유자는 없고 불자는 많으니 유자의 시대는 모두 어둡고 더러운 것인가요? 유자의 시대는 그때 맞는 명분과 논리가 있는 것이고 흥망성쇠는 유자도 불자도 다른 사상과 종교도 모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필수불가결하게 존재하는 것이지 않나요?

 

그것마저도 부정하고 더럽고 추악하게만 그려내려고 한 영화의 전체적 흐름이 역사왜곡보다 더 심한 토악질을 느끼게 만듭니다.

 

 

신미 스님을 연기하는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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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 스님, 신미 대사.

 

늙고 지친 세종대왕과 수양과 안평대군은 거들 뿐 모든 것은 신미 스님이 다 합니다.

 

아버지를 닮아 세 아들 중 가장 학문적 재능이 뛰어났다는 평을 받는 문종은 세자 역할 하나 말고는 하는 게 없고요.

 

한글 창제의 역사적 진실은 영화가 픽션이니 내려 놓고라도 영화에서 세종 대왕이 장인을 죽인 것으로 신미 스님이 세종 대왕을 나무라는데 아무리 불교를 앞세운 영화라지만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 데 일조한 태종의 서슬퍼런 숙청의 시대에 어떻게 아버지의 뜻에 반대해 아내를 위해 장인을 지킨단 말인가요? 심지어 장인을 죽인 게 세종 대왕으로 묘사하다니 이건 영화라도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닐까요?

 

 

차라리 영화 제목을 <나랏말싸미>가 아닌 신미 스님으로 지었다면 어땠을까요?

 

나랏말싸미라는 타이틀을 내세웠다면 신미대사를 살짝의 존재감만 들어냈어도 충분히 큰 이미지를 발휘했을 텐데 너무 그를 위한 영화가 되어 버린 듯 해서 반감을 크게 산 게 아닌가 싶어요..

 

불교 영화이자 신미 스님을 위한 영화이고 아무리 고승으로 명성이 드높았다고는 하나 세종 대왕을 늙고 연약한 평범한 군주로 만들어가며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심은 너무나 큰 무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세종대왕 업적을 덮는 게 목적인가, 하는 느낌마저 받게 됐어요.

 

신미 스님이 조력자 정도만 했어도 역사적으로 엄청난 파장인 데 영화는 아예 더 나가서 신미 스님이 다 했고 세종 대왕은 우리가 알던 성군의 이미지 보다는 늙고 약하고 신하들에게 휘둘리는 그저 그런 조선의 평범한 왕으로 비춰진 듯 해서 반발이 커진겁니다.

 

무능하고 사대밖에 모르는 조선 - 조선 중기 이후의 조선 - 을 전체의 조선 국가 이미지로 폄하하려는 영화 전체 분위기는 이 영화가 역사왜곡을 넘어선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헌왕후를 연기하는 고 전미선

이미지 다음 영화

 

고 전미선 씨의 유작이 된 나랏말싸미.

 

너무나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서 더욱 안타까움이 씁쓸함이 오래 남는 영화였어요.

 

좀 더 좋은 작품에서 만났다면 오래오래 길이 남을 영화였을 텐데 유교는 무능한 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불교는 좋고 훌륭하다, 라는 흑백 논리로 단순화하려는 영화를 만들다니요! 

 

보는 내내 흉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한글 창제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영화도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도 아니었다는 데에 더 큰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참고로 훈민정음과 신미대사에 관련된 내용은 여기 기사 내용에서 역사적 사실에 관련된 얘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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