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만난 사람들

Posted by 톰하 3H의 신나는 인생
2018.09.19 08:41 잡담


새벽 4시.


추석이 가까워지자 오히려 한가해진 물류센터에요.


갑작스레 일을 나갔고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은 물량으로 인해 연장 근무가 아닌 정상적인 새벽 4시 업무 마감을 했지만 아파오고 떨리는 두 다리는 하루를 힘들 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듯 해요.


노동 일 아무나 하는 게 아냐,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적응하지 못한다는 건 아닌 듯 해요.



새벽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러 나왔다


물류센터는 경기도 외곽에 위치해 있어 새벽 4시에 업무가 끝났음에도 버스를 기다리고 출발하는데 30분, 버스를 타고 도착지인 군자역까지 50분이 걸려 새벽 5시 20분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어요.


통증이 느껴지는 다리를 생각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왔어야 했지만 도쿄 여행이 이틀 뒤라 운동하는 셈 치자, 마음을 먹고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카카오맵을 통해 보면 군자역에서 집까지 55분.


이틀 연속 물류센터로 일을 나간다면 걸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지만 연장 근무도 없었고 다음 날 또 물류센터로 알바를 나갈 일 또한 없기에 걸어보기로 합니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상쾌하네요. 반팔 티 하나만 입었지만 노동할 때 더워서인지 새벽녘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군자역에서 군자교로 걸으면서 보니 새벽 일감을 기다리는 분들이 보이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일이 이렇게 소중한데 어제, 오늘 물류센터는 사람이 부족해서인지 계속 문자가 왔어요. 사실 그 문자 때문에 덥썩 하루를 나가게 된 것이지만요.


이런 이른 시간에 내려오는 눈껍풀에 무게를 견드기 쉽지 않을텐데 힘든 노동을 위해 기다리는 분들을 보니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투덜됐던 제가 얼마나 우습던지요.


저와 같은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걸어가는 분들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군자교를 지나 장안벚꽃로에 들어서는데 아니 이런 새벽에 운동하는 분들이 많아 놀랐어요.


저 위 사진 속 모습을 보면 새벽 5시 44분인데 사람들이 모여 운동인지 체조인지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너무나 한적한 길을 걸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운동하는 분들이 저를 보며 놀랐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ㅎ


 젊은 친구는 술 마시고 밤을 샌 모습도 아닌데 머리는 너무나 짧은 반삭으로 밀은 머리에 옷은 노동으로 냄새나고 쌀쌀함에도 반팔 티에 어딘가 매치가 안 되는 모습이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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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벚꽃로 주변 동부간선도로의 새벽 차량들




조명등이 비추고 있지만 어둠이 짙게 내리 깔려있는 이 시간열심히 운동하는 분들을 보니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세계'가 펼쳐진 모습이더군요.


누군가에게는 힘든 노동의 시간이었을테고 누군가에는 운동으로 시작하는 하루일테죠.


통근 버스에 내려 분주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부터 일감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아침부터 건강을 위해 운동하러 나서는 사람들과 이미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해가 떠오르기도 전의 이른 시간의 생생한 모습을 보니 지난 살아온 시간들에 미안해지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에 대해, 오늘 하루 그리고 내일 또 다른 오늘의 하루를 노력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루 노동의 가치 88,495원 (79,000원 + 추석 인센티브 10,000원)


오후 5시 20분의 통근 버스를 타고 새벽 5시 20분에 통근 버스에서 하차했으니 연장 근무가 없는 하루는 노동의 시간 8시간과 식사와 휴식을 포함한 1시간 그리고 이동하는 시간들에 의해 쓰여졌네요.


그리고 집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13시간 이상이 쓰이는군요.


보통 남들 잘 시간에 일하고 앉아 쉴 일 없이 서서 움직여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면 이 돈은 어떤 의미를 갖을 수 있을지 한 번에 생각이 떠오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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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벽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느끼게 됩니다.


나이가 마흔이 되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에요.


지나간 시간이 40년이라도 남은 시간이 그 이상일지 이하일지 알지 못하죠. 이제 갑작스레 건강에 적신호가 와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를 나이에 들어섰습니다.


큰 병 없이, 사고 없이 산다면 8~90살일테고요. 그렇지 않다면 그 사이 언제라도 남은 삶을 병원 신세를 지다 생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 '하루'를 어떻게 마주하고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해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날 새벽에 마주한 사람들을 보니 더욱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낼 것인지 중요하게 생각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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