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인생 최고의 책 중 하나로 남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2018. 8. 2. 17:43문화/서평

반응형


# 이 글은 반어체로 적었기에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제목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니 너무나 식상한 문구이지 않은가. 심지어 영국 작가인데 온갖 상은 다 휩쓸다 못해 뒤늦게 이 책으로 맨부커 상을 받았다는 책 서문을 읽으니 꽤나 어렵고 쉽게 할 말도 꼬아 말하는 수상작이군. 이라는 반감이 우선 들었다.


"'읽히는 소설'을 비판하는 이들이 문학으로 하여금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을 바꾸게 하려면, 먼저 높은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할 것" - 소설가 그레이엄 조이스 맨부커 상 논란에 대한 글에서


사실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신춘문예상, 현대문학상 등의 수상작을 읽기 좋아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글이나 겨우 깨우친 내가 '사고와 감각을 넓혀 줄'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비슷한 이유로 '사고와 감각을 넓혀 줄' 또 하나의 책이 되어 줄 이 책을 집어 침대에 누워 읽기 시작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 줄리언 반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에이드리언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깝다'

토니, 앤서니


책의 초반부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들의 역사적 개념을 정의 내리는 부분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란 승자의 거짓말일까? 패배자의 자기기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일까?


우리나라 사람만큼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어쩌면 역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픽션에 훨씬 가까운 드라마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지만 역사가 무엇인지 조차 설명하지 못한다. 역사 인식은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를 의심조차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이는 동아시아 및 대부분 국가에서 빚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역사 인식은 꽤나 고리타분한 철학적 지식을 요구한다. 고로 이 책은 무척이나 따분하게 느껴졌다. 역사 얘기로 초반부를 채우고 맨부커 상으 받은 책이니 이런 지적 유희를 계속 즐기다 책이 끝나겠구나 생각 할 무렵, 책은 토니의 대학 생활과 사랑 이야기로 빠져든다.


난 이 때, 왜 이 책 제목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생각해 봤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토니는 컴플렉스와 비교적 평범한 지적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그가 베로니카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헤어졌을 때, 베로니카가 토니와 헤어지고 처음 그와 잤을 때, 토니 (앤서니)의 절친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가 사귀게 된 것을 알았을 때


이야기는 그 시점들을 회고한다. 하지만 책에서 가장 중심적인 부분은 이 때를 회고했다는 점이다.


평범한 남자 토니는 자신의 절친이 자신의 여친과 사귀고 얼마 안 가 자살을 했을 때만 해도 그저 모든 걸 잊기를 바랬다.


그리고 평범한 남자의 삶답게 결혼하고 이혼했으며 딸 하나를 갖었고 그 딸이 아들을 낳아 손주를 봤다. 그리고 은퇴 후, 자신의 소박한 삶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삶의 소소함을 느끼며 살던 무렵 뜻하지 않은 유산상속의 편지를 받는다.


바로 베로니카의 어머니에게서 말이다!


뜻밖의 유산상속과 더불어 자신의 절친이었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또한 유산으로 받게 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의 삶에 의문이 쌓이기 시작했고 여러 호기심이 일었다. 상속받은 파운드는 바로 전달받을 수 있었지만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전여친이었던 베로니카 손에 들어가 받을 수가 없자 그는 베로니카에게 연락을 취하게 된다. 자신의 삶과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베로니카가 다시 그의 삶에 나타난 순간이다.


시간이란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 줄리언 반스


그리고 그 동안 기억에 살았있던 진실과 기억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진실이 서로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베로니카로부터 에이드리언의 일기 중 일부를 받게 되는데 베로니카가 고의인지 아님 거기서 끝나는 부분인지를 알 수 없는 단락의 일부를 프린트 해 그에게 보낸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만약 토니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 줄리언 반스


그는 베로니카의 고약한 성격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치를 떤다. 그리고 절친의 일기를 받기 위해 베로니카를 직접 만나기로 하는데...


그러나 이런 게으른 클리셰가 이전에 일어날 불변의 진실과 맞닥뜨린 것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 줄리언 반스


사실, 소설의 중반부에서 후반부까지 토니가 풀어나가는 서술은 꽤나 따분하기 그지 없었다. 평범했고 평범하고 그래서 문학적 소재로 쓰기 어려울법한 그를 어째서 맨부커 상에 빛나고 그 상에 못지 않는 수 많은 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는 그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픈 걸까? 사실 그런 생각조차 안 들었다.


그냥 읽었고 재미없는 책이네 하며 읽었으며 다 읽으면 리뷰 따위는 쓰지 않고 수상작 한 권 읽으며 글이나 겨우 깨우친 내가 훈민정음 예의와 해례본을 읽으며 글이 가진 의미와 의의를 조금이나마 깨우치 듯 문학적 의의가 큰 수상작 한 편을 더 읽으므로써 문학적 사고와 감각을 넓혀 줄 무언가를 얻겠지 하면 그 뿐이었다.


그나저나 토니 아저씨 너무 답답한 사람이네 라고 느낄 무렵.


회한이란 (remorse) 말은 어원적으로 한 번 더 깨무는 행위를 뜻한다. 회한의 감정은 그와 같다. 내가 썼던 말을 다시 읽을 때 나를 깨무는 이가 얼마나 그악스러웠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 줄리언 반스


그가 기억한 사실과 그가 기억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사실을 하나씩 마주하면서 그는 회한이란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요컨대 b, a1, a2, s, v라는 정수가 포함된 축적은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b=s-v+a1 혹은 a2+v+a1xs=b?


그래서 예를 들면, 만약 토니가

에이드리언 일기


토니가 알고싶던 베로니카의 말 뜻을 찾아 나서면서 얘기는 급하게 빠르게 전개된다. 그렇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싶은 마음에 그나마 마지막 말 한마디를 그냥 그렇게 흘려 보냈다.


난 사실 그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 이햐를 못했다. 토니가 그랬듯 말이다. 토니가 집에 돌아와서야 남자 간병인이 했던 말을 이해했듯 나 역시 토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의 글을 읽을 때야 마침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토니가 그랬듯 말이다. 토니는 그가 놓쳤던 수학 공식을 마침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래서 예를 들면, 만약 토니가가 무슨 의미였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나도 깨닫게 된다.


그래. 맞다. 난 또 하나의 토니였던 것이다.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기억과 진짜 사실과의 괴리는 얼마나 될까? 내 기억 속의 진실은 어디까지의 사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토니처럼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내가 토니였고 그랬기에 난 토니에게 화가 났었다. 그리고 이 책이 형편없다고 믿으며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깨달았다.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에게 토니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자신의 잘려나간 파편의 기억을 되찾았을 때 조차 그는 진실과 마주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고 나서야 회한이란 감정을 느꼈다.


나중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영화로도 나왔다. 2017년에 나왔는데 영화로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인생에 남을 최고의 소설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이 마음에 들었다면 글 아래 공감을 눌러주세요.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