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유쾌한 희망 스토리 '샬럿 스트리트'

2018. 6. 21. 08:27문화/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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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자지... 떠났지만." 이 시의 제목은 '전 여자친구 (EX)'

샬럿 스트리트 / 대니 윌리스 저


- 베트남 푸꾸옥 해변에서 -


처음 책을 펼친 건 하노이에서였어요. 찰스 디킨스의 해학적 어쩌구 하는 미사여구에 끌려서였죠. 그리고 처음 몇 십 페이지를 읽는 동안에는 도대체 이 책, 무슨 얘기를 하고싶은 거야? 하며 어리둥절했어요. 그리고선 조금 더 읽고서는 책을 덮었죠. 소위 말하는 병맛 나는 소설이였어요.


책을 두 권 가져갔기에 푸꾸옥에 가기 전 까지는 다른 책을 읽었어요. 그 책 또한 내용이 그닥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이 책은 게임 마니아나 아님 찐따 (loser)의 생활기를 병맛나게 쓴 글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어요. 맙소사! 어떻게 포장하면 찰스 디킨스의 해학적 어쩌구를 담았다고 광고할 수 있지? 마케팅의 힘인가? 싶었어요. ㅎㅎㅎ


하지만 푸꾸옥에 도착하니 읽을 책이 없어서 다시 펼쳤어요. 처음 책 분량이 500 페이지가 넘기에 수십 페이지는 대충 읽으며 과감히 내용을 포기했었죠. 그러다 지나치게 쓸데없는 서론이 끝나갈 무렵, 소설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잉글랜드인들이 최고로 치는 유머는 자학과 자조로 이루어진 것 같다. 대충 이런 식이다.


"여자들은 내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알기 전까지는 나더러 못생겼다고 한다. 알고 나서는 못생겼고 가난하다고 한다."

샬럿 스트리트 / 엄일녀 옮긴이의 말

제이슨 프리스틀리. 런던에 사는 서른두 살, 전여친과 헤어지고 친구 데브네 집에 얹혀사는 프리랜서 (무가지 런던나우의 리뷰어). 한 때 교사였으나 적성과 안 맞음을 깨닫고 박차고 나와 친구 조가 디렉터로 있는 런던나우에서 예술, 문화, 음식 등을 평가하는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다. 친구 데브의 집은 신문 가게 옆 비디오게임 가게 2층에 있는데 다들 그 신문 파는 집이 윤락업소인줄 아는데 실제로는 아니다.


데브는 고전 게임을 파는 비디오가게 주인이다. 하지만 사업성은 전혀 없고 아버지로부터 지원을 받아 간간히 생활해가고 있다. 최근에는 식당에서 서빙하는 폴란드 여자 파멜라를 좋아한다.


책의 내용은 샬럿 스트리트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는 걸로 시작한다. 그 날 특이하게 한 손 가득 물건을 든 택시를 타려는 여자를 도와줬다는게 이 책의 시작이에요. 대도시의 사람들은 으레 지나쳐 갔을 법한 단 하루, 단 한 순간. 그 여자에게는 도움을 주고 싶었던 제이슨이었죠.


하지만 그녀를 택시에서 떠나보내고 남은 일회용 카메라로부터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이것들은 그야말로 스냅숏 (Snapshots)이야. 인생의 스냅숏들. 즐거운 순간 또는 특별한 순간에, 작정하고 찍은 사진이야. 그러니까 계획을 세워야 하지. 특별한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흘러가버리니까. 우린 항상 순간순간을 놓치고 있는 거라고.


자. 여기 열두 장짜리 필름이 있어. 열두 번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거지. 횟수는 한정되어 있어. 그래서 이 조그만 상자에 한 순간씩 포착해서 담을 때마다 여분이 하나씩 줄어들어. 그리하여 마지막 한 장을 찍을 때는 그 순간이 정말 특별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돼. 왜냐, 그 다음에 그런 순간이 와도 그냥 흘러버릴 수 밖에 없으니까.

샬럿 스트리트


그녀에게 돌려주지 못한 일회용 카메라로부터 뭔가의 힌트를 찾기 시작한 데브와 제이슨. 전여친과는 헤어지고 얼마 안 되어 전여친의 페이스북으로부터 새로운 남자 친구와 약혼했다는 그리고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 받으며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되어버린 듯한 제이슨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하고픈 데브는 맷과 애비와 함께 일회용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현상해 의문의 여자를 찾아 나섭니다.


남자는 왜 여자에게 말을 하지 않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안다. 그 특별한 순간이 실은 자기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우울한 두려움 때문이다.

샬럿 스트리트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이에요. 남자는 왜 여자에게 말을 걸지 않을까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거나 버스 및 지하철에서 또는 레스토랑에서 그녀와 눈빛이 마주칩니다. 남자는 그 특별한 순간에 혹시? 저 매력적인 여자가 나에게 눈빛을 보냈나? 하는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결코 말을 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특별한 순간은 실은 자기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거죠. 그저 그 특별하고 황홀한 짧은 순간을 즐기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말을 걸게되면 그 환상은 부서지고 말테니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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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많다. 그리고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하는 일도 잔뜩 있다. 모른다는 것 -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은 특별한 일이다. 모르면 생각이 자유로워진다. 요컨대 멋대로 내 생각을 투사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슬퍼하고, 더이상 관심의 중심에 서지 못하거나 혹은 관심의 일부라도 얻지 못하게 되면 그 잃은 것에 슬퍼한다.

샬럿 스트리트


대니 윌리스는 꽤나 보통의 평범한 남자, 사람에 대해 잘 이해하는 듯 해요. 그리고 자조 섞인 말투 또한요.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차라리 모르는 게 그리고 그 모른다는 사실 조차 모른다는게 '약'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ㅎㅎㅎ


아는 게 오히려 피곤하고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죠.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에 슬퍼하고 세상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볼 때 점점 슬픔에 빠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SNS에 그렇게 자신을 알리고 싶은 거겠죠.


난 이렇게 지금 행복해. 지금 특별한 공간에 있어. 지금 특별한 하루를 보냈고 멋진 음식과 함께야. 멋진 상품들을 갖고 있고 그것들이 내 삶을 빛나게 해. 애써 태연한 척 나를 중심에 놓고 그 사물들을 보란듯이 살짝 비켜 찍어 남들에게 보여주고 그들로부터의 관심을 즐기죠.


그 관심 마저도 잃게되면 내 특별한 순간 뒤에 감춰진 초라한 현실을 견디기 힘들테니까요.


"실패, 후회, 이기심, 오만을 구글에 쳐봐. 그럼 네 사진이 나올걸. 그게 내 인생의 키워드야."

샬럿 스트리트


전여친이 제이슨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살라며 해준 충고의 말이에요. 사실 저에게도 해당되기도 해요. 실패했고 후회스런 짓도 했으며 이기심이 강했고 오만은 쩔었죠. 구글에 치면 나오지 않겠지만 내 인생의 키워드 중 주요한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런 단점들만 인간은 가지지 않으니까. 단점 만큼 뭔가 나만의 장점 또한 있으니까.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거죠. ^^*


새로운 사건은 가만히 앉아 있는 여자가 아니라 여행하는 여자에게 찾아온다.

짐바브웨 쇼나 부족의 속담


처음에 대니 월리스가 말도 안 되는 짐바브웨 쇼나 부족의 속담을 책에다 자꾸 써댈까? 정말 쇼나 부족은 있기나 한 걸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책의 말미에 일회용 카메라의 그녀의 이름이 '쇼냐'라는 걸 알게되요. 그래서 그렇게 짐바브웨 쇼나 부족의 속담을 계속 인용한겁니다. ㅎㅎㅎ


'쇼나'라는 이름이 소설의 주요 핵심 사항이 아니라서 이름을 그대로 밝힐게요. 책 초반에 짐바브웨 쇼나 부족의 속담이 나와 황당했다면 이런 이유입니다. ㅎㅎㅎ


저 속담 말고도 꽤나 많은 속담이 있는데 저 속담을 적은 이유는 굳이 여자에게만 해당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사건은 가만히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생길 리가 없죠. 밖을 나가고 돌아다니고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친구, 만남, 인연 모두 앉아서 다가오길 기대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낙천적인 마음을 가지고 임할 때 다가오는 것들인 것 같아요. 그런 새로운 누군가가 자신의 상황을 바꾸도록 도와줄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자신의 힘 만으로 바꾸기 어려울 때도 있잖아요.


그렇다. 우리 모두 나름의 키워드를 갖고 있다. 하지만 키워드는 바뀔 수 있다. 상황은 변한다. 사람은 변한다.

샬럿 스트리트


물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죠. 하지만 인생의 키워드가 실패와 같은 것들로 가득했다면 그건 그저 내 인생의 단점이 부각된 키워드일 뿐이죠. 내 의지로 내 의지가 부족하다면 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점이 부각된 키워드들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이슨 또한 절친인 데브의 도움과 그의 옛 제자 맷과 새로 알고 지내게 된 애비를 통해 발전하고 나아가 이루어낼 수 있으니까요. 우리 또한 그럴테고요. 


책은 유쾌함과 자조적인 농담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꽤나 즐겁게 읽히면서도 새로운 상황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부지불식간에 넣어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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