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카와 미와 아주 긴 별명 -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

2020. 3. 28. 14:58문화/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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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야 책을 찾아 읽게 됐는데 흥미로운 점은 책의 저자인 니시카와 미와가 영화 아주 긴 별명의 감독을 맡았다는 사실이었다.

 

니시카와 미와에 대해 궁금해 알아봤는데 그녀의 영화는 대부분 감독과 각본을 같이 맡았다는 점이다.

 

 

특이하지만 소설가로써의 재능과 영화를 만드는 재능을 두루 갖추지 않았나 싶다.

 

소설 아주 긴 변명을 쓸 때 영화를 만들 계획으로 쓴 것인지 아님 소설을 쓰고 보니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소설에서도 잔잔하지만 깊이가 있다,라는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을 정도로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흥미를 유발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만들어낸다.

 

영화를 본 지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책 읽기를 마치며 영화가 아닌 소설에서의 아주 긴 변명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소설 아주 긴 변명 (저자 니시카와 미와)

 

이 사람의 '아직'에는 '드디어'가 따라붙을까, 아니면 영원히 '아직'으로 끝날까. 

함께 사는 입장에서는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의 실태에 차이를 느끼는 법이고, 또 그 점을 용서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고 마는 법이다.

 

소설가 쓰무라 케이는 어느 정도 소설가로써 입지를 다진 인물이지만 그의 내면은 여전히 과거 많은 콤플렉스를 가진 어딘가 단단히 엉켜 상당히 꼬여있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와 동명이인 (기누가사 사치오)이기에 어려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야구 실력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애써 야구를 외면했고 그와 연관된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나서기 싫어 소설가로서는 쓰무라 케이를 사용한다.

 

대학 때 아내, 나쓰코를 만나지만 어느날 갑자기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우연히 들린 미용실에서였다. 아내 나쓰코와 연애 후 결혼 후에도 무명이었던 그는 아내에게 의지해 산다.

 

훗날 소설가로써 인기를 얻게지만 당시 아내에게 빌 붙은 과거 자신의 콤플렉스를 여전히 갖고 있다.

 

재난이 없는 여행은 신기하게 추억도 별로 남지 않는다.

 

나쓰코는 고등학교 단짝 친구인 유키와 매년 그렇듯 같이 여행을 다닌다. 지난 여행 때 스키 사고를 당해 한국인 여행객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뒤 다시 스키 여행을 떠나기 위해 탄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로 인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아주 긴 변명에서 나쓰코 역은 후카츠 에리가 맡았다.

 

 

과거는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빨리 멀어지고 말았다. 손이 닿지 않는, 먼 저편으로.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과, 이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잃는 것과는 슬픔의 정도가 비교가 안되겠지만, 후자가 빠질 실의의 늪 또한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소설가로 성공한 그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도 될 아내이건만, 나쓰코는 니가 벌어다 주는 돈 따위는 필요없어,라고 항변하듯 미용실 일을 계속 해나간다. 오히려 과거에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살았었지 하며 자존감 높은 여성으로 빈틈을 보이지 않는 그녀가 쓰무라 케이는 못마땅하다.

 

아내 나쓰코가 단짝 친구인 유키와 스키 여행을 떠난 그 날도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애인을 불러내 함께하고 있었다. 과연 쓰무라 케이는 아내에게 남은 감정은 있었을까?

 

애인과 함께 하루를 보낸 후 다음날 아침 아내가 탄 버스의 전복 사고를 알게 된 뒤에도 사고 장소를 찾아간 뒤에도 쓰무라 케이는 아내에게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애인과 함께 했을 때와 형사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면서 아내에게 남은 감정이 없었음을 말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실의의 늪에 빠진 기분이 들었음을 묘사함으로써 아내를 잃은 실의감을 들어낸다.

 

자기애의 정도는 끔찍하게 심한데 건전한 자신감은 부족하고, 인생관이 염세적이며 자기보다 힘없는 존재를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거나 귀찮은 일은 절대 짊어질 수 없는 인정이라고.

 

쓰무라 케이를 이런 인간으로 생각하는 건 아내 나쓰코만은 아니었다. 그를 챙기는 매니저 또한 그를 그런 인간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쓰무라 케이가 유키의 남편 요이치와 그의 가족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저 인간, 아내가 죽더니 살짝 미친걸까, 매니저는 속으로 생각해본다

 

'비극의 기억이 풍화되고 있다.'

 

두 아이를 남겨 둔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 유키를 그리워하는 요이치. 사람들은 항상 남의 비극에 안타까워하지만 시간의 힘에 의해 자연적으로 잊혀져 버린다. 하지만 같은 상실을 겪은 쓰무라 케이는 어쩐지 요이치 가족을 그냥 버려두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점점 늘려만 간다.

 

살아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은 거야. 허접한 생각, 입에 담을 수 없는 한심한 생각도. 그러나 생각한다고 해서 그게 다 현실이 되는 건 아니야.

우리는 말이지. 우리가 다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을 그렇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어. 그러니까 자책하지 않아도 돼.

 

쓰무라 케이는 자존감이 높은 아내에게서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 요이치의 어린 두 아이들, 신페이와 아키라를 통해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자존감이 높아 자신에게 기대지 않는 아내가 불만이었던 케이는 아내를 잃은 뒤 상실의 늪에 빠져서야 깨닫게 된다. 요이치의 아들, 신페이에게 '헤어지는 건 순간이야. 그러니까 소중한 것은 꽉 잡으라고.' 말하는 대사가 가슴깊이 와 닿는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아니면 자신처럼 되고 만다고.

사랑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 될거라고. 그러니까 소중한 것은 꽉 잡으라고.

 

그는 아내가 갖고 싶었던 가족을 소중한 것을 잃은 뒤에야 그것이 소중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남자는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그에게 새로운 가족이 등장하면서 그에게 힘을 주었고 비로서 남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며 크게 운다. 어쩌면 그 때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 볼 용기를 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도 소설도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시간 될 때 한 번 꼭 읽어보거나 영화를 찾아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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