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상처 하나 없는 사람, 누가 있을까? 우연한 여행자 - 앤 타일러

2018. 5. 18. 13:37문화/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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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 달 지내는 용도로 책 3권과 e-book을 준비해왔는데 가져온 책은 다 읽었고 요새는 e-book을 보고 있다. e-book은 워낙 장편 시리즈인데다 모바일로 책을 보는걸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가급적 안 읽고 있는데 남은 제주 생활에서, 특히 버스를 기다리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잠들기 전에 읽을 책이 없으면 몹시나 인내심이 바닥이 나버린다.


그렇게 3권의 책 중에 가장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530페이지나 되므로 읽을 내용이 많다) 책이라 보통은 잠들기 전에 읽었는데 고르게 된 계기는 제목이 우연한 여행자였고 얼핏 책 제목과 살짝 간략적인 내용을 보건데 내 삶과 여행도 마치 우연한 여행자가 아닐까 싶어 고르게 된 책이었다.




우연한 여행자 - 앤 타일러


책을 번역한 공경희씨도 밝혔지만 나도 개인적으로 여성작가분이라 여자분이 주인공일거라 생각했다. 소설속의 주인공 메이컨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세라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은 유쾌하게 날아가버린 소설이었다.


예전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번역한 소설, [먼 북쪽]에서 '의외성이야말로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밝혔듯 그런 의외성이 어쩌면 이 책을 약간의 긴장감과 대부분의 유쾌함으로 꽤 긴 소설임에도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읽게되지 않았나 싶다.


우선 메이컨이라는 남자는 나와 대조적이면서 나와 비슷한 면을 가진 남자였다.


소설속의 메이컨은 출장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 '우연한 여행자' 시리즈를 쓰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그는 또는 그의 원 가족들은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따른다.


솔직히 메이컨의 이 부분이 내가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였는데 나는 여행 작가도 프리랜서 작가가 될 책을 쓸만한 깜냥이 없다. 그런 재능이 없다는게 몹시 슬프지만 여행을 꽤나 좋아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메이컨은 비즈니스맨을 위한 여행서를 그것도 시리즈로 여러 국가편을 쓰는데도 여행을 싫어한다. 꽤나 흥미롭다.


예전에 호텔에서 생활할 때 터키 부르사에서 현대 자동차 직원분들을 알게됐다. 그들은 쉐라톤 부르사 호텔에서 50박 100박을 회사 돈으로 지내며 스타우드 호텔 멤버쉽을 갱신중이었다. 당연히 나도 그 직원분들도 각기 다른 스위트 룸을 하나씩 차지해 지내며 라운지에서 저녁 12시까지 술을 마셨다. (쉐라톤 부르사는 현대차 직원들 때문에 이브닝 칵테일 라운지 운영시간을 저녁 8시에서 12까지 운영했다)


그 밖에 콘래드 호텔이나 힐튼, 메르디앙 외에도 여러 여행지 호텔 라운지에서 비즈니스 맨을 만나 그들의 투숙을 지켜본 나로써는 개인 여행자인 나는 호텔비를 꼬박 내 돈으로 내 지갑에서 나가지만 그들은 회사돈으로 자며 남는 시간 여행을 즐기고 회사로부터 월급도 챙긴다. 당연히 비행기도 무료로 타고 말이다.


6~7년간을 호텔 멤버쉽 최고 티어를 유지했으니 그것도 5년 동안은 짝꿍과 같이 유지했으니 해마다 4~5성급 호텔에서 100~150박 이상을 머물렀었다.


그런 여행 생활을 길게 하면서 비즈니스 맨들이 몹시도 부러웠는데 소설 속 메이컨은 비행기나 여행지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척 지루해보였다. 그래서 일정보다 항상 먼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여행에 대한 대조적인 면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집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여행이라는 걸 하고 싶고 그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기 바쁘니 말이다.


하지만 무척이나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지향하는 옆의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유형인 점에서는 똑같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고리타분한 인간형이 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책 속에서의 그는 그리고 현실에서의 나는 무척이나 고리타분한 인간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은 비슷했다.



메이컨과 처음 잠자리를 가지던 날 그의 고통스러운 과거 이야기를 듣고 그의 손을 제 배의 제왕절개 수술 자국에 가져다 대고 이렇게 말할 줄 아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이런 상처가 있어요. 우리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지요. 당신만 그런게 아니에요."라고. 그러면 나도 책을 덮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래,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니...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 작가 공지영 -


소설 속 갈등은 메이컨과 세라가 결혼 20년을 보낸 뒤 이혼이라는 파경을 맞이하면서 시작한다. 이혼은 그 뒤겠지만 별거부터 시작한다. 그 계기는 자식을 잃으면서 시작되는데 삶의 균열은 조금씩 조금씩 이뤄지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크게 쪼개지고 만다. 그리고 우연히 메이컨의 인생에 들어온 뮤리엘.


생각해보면 '우연한 여행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의 삶이 우연히 떠난 여행길일 테고, 우리는 그 길을 나설 수밖에 없는 여행자이다. 삶 속에, 그 우연속에 어떤 고통과 어떤 기쁨이 있을지 우리는 모른다. 그저 여행자가 되어 길을 걸어갈 수 밖에 없다.

- 번역가 공경희 -


우리 모두는 우연한 여행자이다. 여행이 아닌 삶에서도 말이다. 내가 한국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내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니듯 우리 모두는 그렇게 우연히 자신이 속한 곳에 우연히 태어나 자라고 희노애락을 느끼며 산다. 너무 운명론적으로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하지만 내일과 내생 중에 과연 어느 것이 더 빠를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가?


여행도 삶도 이런 우연과 운명적인 것들이 뒤섞여 묘한 매력을 만든다. 때로는 그로인해 좌절하고 가슴아파하고 실망도 감추기 어렵지만 때로는 그 희열에 감동에 설레임에 가슴 뛰고는 한다.



물론 메이컨과 비교하면 정반대의 인간형이지만 소설과 비슷한 듯 하면서 다른 영화가 한 편 있어 추천하고 싶다. 나는 무척이나 감명깊게 봤는데 왜냐하면 내 삶의 핵심 부분과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은 오히려 영화가 주는 더 핵심적인 부분에 감동하고 끌릴것이다. 이 소설처럼 말이다.


- 출처 다음 영화 -


영화 :  Up in the Air  


IMDB 평점 : 7.4점 (289,929명 평가), 조지 크루니 주연이니 못 보신 분들은 찾아 한 번 보길 바란다. 꽤나 재미와 감동을 주는 영화다.



"안락의자에 앉은 자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꿈을 꾸지만 여행하는 이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지내기를 꿈꾸지요."

[우연한 여행자] 중에서


소설은 마지막 부분에서야 뭔가의 반전을 노린다. 메이컨이 프랑스로 우연한 여행자 시리즈를 쓰기위해 비즈니스 여행을 떠났을 때 그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내용은 여러 의외성과 우연성이 뒤섞여있다. 때로는 느리게 흘러가서 답답함을 느끼고 때로는 그 유쾌함에 웃음을 짓게 된다. 그에게 새라가 더 어울릴지 아니면 뮤리엘이 더 괜찮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우연함 뒤에 나타나는 유쾌한 삶의 진실이지 않을까? 비극도 희극도 우리네 인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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