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자비 - 루네이 저

2018. 3. 5. 20:41문화/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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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아버지 세대를 노동자의 시선으로 그린 자비.


중국 문화대혁명 전,후 시대 (1966~76)에 빈곤에 쩌든 농촌의 모습을 그렸다. 굶어죽고, 아사에 벗어나고자 가족들은 고향을 버리고 떠나지만 대부분 먹을 곳을 찾기도 전에 죽음을 먼저 겪게된다. 


대기근의 시대. 문화혁명의 시대를 사상이나 이념이 아닌 공장의 노동자의 성장을 통해 모순된 사회 문제를 담담히 그려 낸 책이다.





자비 - 루네이 저



부모를 잃고 삼촌에 양아들이 되어 공업학교를 나와 페놀 공장에 일하게 된 쉬성.


지난 수십 년간 그곳의 이름은 '전징 화학공장'이었고 주로 페놀과 아교를 생산했다. 페놀은 향기로운 물질인데 겨울이면 온 시내 사람들이 그 향기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또 아교는 원료가 돼지뼈와 소뼈인데 여름이면 썩은 시체 냄새가 동남풍에 실려 강 쪽으로 날아갔다.


- [자비] 중에서 -


화자는 죽음을 무척이나 덤덤하게 말한다. 그런 시대였으니까. 그렇게 너무나 당연하게 굶어 죽었던 시대였으니까. 그 시대에 부모를 잃었던 쉬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삶과 죽음, 공장을 통해 나타난 사회적 모순과 세태를 그렸다. 또한 쉬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성장하며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죽음은 자연의 일부란다. 우리의 불행은 전체의 '조화'속에 들어있는 것에 불과해. (중략)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이것이 전부 일시적인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될거야. 자연의 순리는 위대하고 아무도 그 질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단다.


- [어리석은 물고기] 김성중 저 -


마치 어리석은 물고기에서 한 장면이 [자비]의 죽음과 대비되는 것은 아마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저항하지 못하는 순응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들은 먹고 살기위해 페놀 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하고 몇년 안 되어 간암에 걸려 죽는다. 그나마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보조금이라는 형태로 연명하지만 죽음을 뻔히 알면서도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죽지 않기위해 유도물 취급 현장에서 꿋꿋하게 일한다.



이 책에는 보조금 이야기가 죽음이라는 단어와 함께자주 등장한다. 보조금은 삶의 영역이다. 문화혁명 전후 특수한 시대에 특수한 제도를 가진 보조금은 삶을 뜻했다. 노동계급의 월급은 많지 않았고 겨우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그나마 가족들이 안 아팠을 때 얘기고 가족 중에 누가 아프게 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끼니를 굶거나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런 위기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보조금이었다. 보조금은 그래서 '삶'이었다.


'병'과 '굶주림'으로 인한 죽음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보조금'이었던 것이다.



"쉬성아, 밥을 먹을 때는 삼 할은 허기를 남기고 옷을 입을 때도 삼 할은 추위를 남겨라. 그 허기와 추위가 밑천이 돼서 앞으로 허기져도 아주 허기지지는 않고 추워도 아주 춥지는 않을 게다."


삼촌이 부모를 잃은 쉬성을 거둬들이며 앞으로 살아갈 쉬성에게 조언해준 말이다. 대기근을 겪던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잘 표현해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아침에 안개가 자욱한데 어둠 속에서 공기가 응결되어 안개가 영 안 걷히고 강물도 보이지 않았다. 여름밤에 폭우가 쏟아져 길이 분명치 않고 멀리 수면 위로 번개가 쳐서 온 강이 눈밭처럼 밝았다.


책 내용중에서 가장 멋진 표현이었다. 책 내용은 쉽고 표현도 직설적이어서 무척이나 빠르게 읽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택동 문학혁명 전후 시대의 끔찍한 중국의 삶을 잘 표현해서 시대적 현실감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더 책을 읽고 공감하며 몰입감을 불러 일으키는게 아닌가 싶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대륙의 딸] - 장융 저 또한 군벌시대에서 문화혁명을 거친 시대를 잘 그려낸 책인데 이 시대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통해 중국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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