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역사를 배우다 - 제주국립박물관

2018. 5. 9. 16:34톰군/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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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코스닥 시장에 잘못 발을 디뎠다고 글을 썼는데요. 오늘은 더 하락하는 통에 비중을 100% 채워 아주 불안한 심리를 이어가다보니 아침 동안에는 어디 여행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잊고 주식시장 들여다 보느라 정신 없었네요.


겨우 코스닥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밖으로 나와 제주국립박물관 및 사라봉을 구경하러 제주시쪽으로 왔어요. 하지만 코스닥 시장이 오후에는 어제와 반대로 위로 턴, 상승하면서 제주국립박물관만 구경하고 지금은 제이스페이스에서 주식 비중을 낮추며 정신 휴양중입니다.



-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제이스페이스 (J-SPACE) -


제이스페이스에 관련되서는 나중에 따로 여행기에 쓸 예정이라 제주국립박물관을 다녀오고 난 뒤 알게된 제주의 역사에 대해 쓰려고해요.


4만년 전 까지만 해도 제주도와 한반도, 중국, 일본 규슈 지역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예전 국사 시간에도 얼핏 배운 기억이 나는 얘기가 나와요. 실제 애월읍 빌레못동굴 등에서 북반구 유적 등을 발견하면서 예전에는 하나로 묶여있는 대륙이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합니다.


1만여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바다의 수면이 높아지면서 제주는 육지와 분리되어 '섬'이 되었다 합니다. 제주의 기후가 지금과 같이 된 것은 3천 년 ~ 2천 년 전 부터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탐라국으로 알려진 시기는 476년, 탐라국이 백제에 토산물을 조공하면서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문주왕편에 나와있어 그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합니다. 679년에는 신라가 사신을 보내 탐라국을 지배하기 시자합니다. 그런데 801년에는 탐라국이 신라에 조공하였다 하네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애장왕 편에 나와있어 역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가 탐라국, 제주를 지배하다 왜 다시 조공을 바치는 국으로 바뀌는걸까요? 처음에는 연표를 보며 헷갈렸는데요.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 고려 때까지의 탐라국인 제주를 대한 역사를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역의 주체였던 해상왕국 탐라는 1105년 고려의 탐라군으로 편입됩니다.


하지만 <고려사>를 통해 보면 성주와 왕자, 도내라는 탐라국의 지배자의 명칭이 나오는데요. 성주는 탐라국의 국왕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성주와 왕자는 고려 숙종 (1105) 탐라가 고려에 편입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지위가 세습되면서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 때 탐라국을 지배했지만 완전히 지배한 것이 아닌 명목상 지배한것이라 생각됩니다. '너 앞으로 내말 잘들어? 내가 위니까 조공 꼬박 바치고! 그리고 나라에 위기가 생기면 도우러 오고! 그럼 내가 너네 자치권을 인정해줄게.' 이런 식의 조공국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당시 통일신라의 경주는 무역의 마지막 종착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육로를 통한 실크로드일 경우가 그러했을거고요. 결국 바닷길을 이용한 남중국해의 바닷길은 제주도 및 몇몇 해안도시 등을 거점으로 삼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탐라에서 출토된 중국 송의 동전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 제주국립박물관 -


제주가 다른 나라에서 알려진 이름들은 주호, 섭라, 탐라, 재주 등으로 각 시대별로 바뀌었습니다.


1002년에는 화산이 폭발해 5일만에 멎었다는 내용이 <고려사절요> 목종 편에 실립니다. 1007년에는 바다 가운데 상서로운 산, 서산이 솟았다는 얘기가 같이 실리게됩니다. 이 섬이 비양도라는 전설도 있다고 하네요.


비양도는 서기 1002년 폭발한 화산인가?  제주매일  <-- 클릭하시면 해당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탐라국의 지위를 잃게된건 1105년, 고려 숙종 때 입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삼별초는 1271년, 제주도를 거점으로 항쟁했던 이야기입니다. 1275년, 여몽 연합군에 패한 뒤 원나라는 참라총관부를 설치합니다.


제주는 과거 황족, 왕족, 고관대신들의 유배지로 유명합니다. 지금보면 참 좋은 곳으로 유배보냈다 싶겠지만 말이죠. 그건 호주도 마찬가지였겠죠? 원나라의 황족, 명나라 때 양왕의 가족, 조선 때 광해군과 추사 김정희 선생 및  최익현 등이 있습니다. 그만큼 지상 낙원이자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유배지의 천국이기도 한 곳이죠. 여기서 보름 이상 머물러보니 도시가 그리워집니다. 제주시로 나오니 조금 살 것 같아요. 그것만 봐도 예전 나라의 수도에서 가장 큰 권세를 떨치던 사람들이 이런 제주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바람불고 날씨는 불안정한 이 곳에서 느꼈을 비애가 아주 조금은 느껴지긴 합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됩니다. 1402년 탐라국의 성주와 국명을 모두 포기당합니다. 사실상 제주의 시련은 조선 때 부터일 듯 합니다. 물론 역사란 IF란 가정도 없고 여러 역학적 관계가 존재하기에 딱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조선은 고려시대에 비해 진일보한게 아니라 후퇴한 암흑의 역사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조선 전기때만 조금 발전하고 중기 이후로는 답보상태를 나타낸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고려에 비해서 국력뿐 아니라 뭐든 면에서 약했음에도 고려가 무신의 난 및 원에 종속당했다는 역사 때문에 우리는 고려의 역사를 무척 약하게 보고 조선의 역사를 강하게 인식하는 듯 합니다. 


조선시대 이르러 제주는 왜구의 침입과 감귤, 말, 전복 등의 토산품의 과장한 공납 및 200년 동안 지속된 제주 사람의 섬 밖 이동 금지라는 출금 조치를 당하면서 모든 면에서 낙후된 섬으로 변질되게 됩니다.


출륙금지령은 인조 1629년 (인조7년)에 내려져 200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합니다.


그 와중에도 제주목사의 가장 큰 책임은 공물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왜국의 침입을 지키는 일등도 했다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건 공납품의 관리와 운반이었을 듯 합니다. 제주말은 가장 중요한 공납품이었으며 귤과 표고버섯, 전복 등은 귀한 특산물이었다 합니다.



- 제주국립박물관 -


조선시대의 끔찍한 세계관을 한 눈에 알게해주는 지도입니다. 중국이 가장 중심에 있고 그 중심에 가까운 조선이야말로 2인자라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했을까요? 고려 때까지 이어지던 세계의 무역항은 이제 중국과 일본으로 제한된 항로만 열어두는 사대교린의 외교정책으로 바뀌며 폐쇄국가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제주는 바람의 기류가 자주 바뀌다 보니 해난사고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표류로 인해 뜻밖의 견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때 명, 청, 류큐왕국 (오키나와), 타이완, 여송 (필리핀), 안남 (베트남) 등으로 표류하는 일이 많았다 합니다.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지만 최부 (성종 18년)는 조선인으로 중국 경제와 문학의 중심지였던 강남과 산둥 지방을 처음 여행한 사람으로 왕의 명으로 견문기를 일기체로 써서 바쳤다고 합니다. 그 글이 <표해록>입니다.


태초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세 신인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왔다.

하루는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사람이 망아지, 송아지, 오곡 종자를 가지고 이곳에 왔다.

세 신인은 나이 순서대로 세 처녀와 혼인하였고, 화살을 쏘아 땅을 정하였다.

비로소 오곡을 파종하고 또 망아지와 송아지를 기르니, 날마다 부유하고 번성해졌다.


- 탐라의 개국신화, 삼성신화 -


제주 역사를 제주국립박물관에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여행이 남들에 비해 길다보니 자연스레 제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네요. 오키나와 여행했을 때도 류큐왕국의 독특한 역사 및 문화가 눈에 들어왔는데 제주도 역사를 알고나니 조금은 더 가까워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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