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황석영 무기의 그늘

2020. 4. 14. 06:06문화/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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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만큼 근현대사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겪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베트남은 미국의 요청에 의해 파병된 베트남 전쟁과 박항서, 인기 많은 휴양지 다낭 정도일 것이다. 그 만큼 우리는 베트남과 친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모르고 그들 또한 우리를 모른다 할 것이다.

 

베트남 다낭하니까 생각난 책 한 권이 있는데 바로 황석영 선생의 무기의 그늘이다. 제 4회 만해 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꽤 오래된 책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의미가 깊다 할 것이다.

 

무기의 그늘 - 황석영

아시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베트남의 근현대 역사는 꽤 복잡하다. 한국의 경우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인 일본이 항복하므로써 해방을 맞게 되지만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동남아 국가들은 유럽 제국과 일본의 침략과 2차세계대전 후 유럽 제국과 다시 한 번 해방을 놓고 전쟁에 빠져들게 된다.

 

2차세계대전 이후 이전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다시 노리고 침략을 가해온 프랑스 (1946~54)를 미국은 막대한 군비를 들여 지원해 주었다. 프랑스와 맞붙어 싸워 일명 항불 전쟁에 승리한 베트남은 제네바 협정에 따라 남북총선거를 실시하려고 하지만 프랑스 식민지의 지배 영향아래 있던 부패한 관리들이 이끄는 남쪽 정부를 지원하던 미국은 선거에서 질 것을 염려해 선거를 무산시키고 만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베트남인들은 미국을 쉽게 믿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을 식민지로 만든 프랑스를 도와준 미국이 자신들을 자유세계로 이끌겠다고 들어왔으니 이런 미국을 따르는 집단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그들을 따르던 부패한 관리들이 이끈 남베트남 정부였다.

 

냉전체제에 자유세계의 선봉이었던 미국은 베트남의 무력개입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의 우방국 중에 가장 많은, 그리고 깊이 참전한 한국군이 있다.

 

 

황석영 선생의 무기의 그늘은 미군에 종속된 한국군의 이야기이자 세계 패권을 놓고 싸우던 미국의 이야기이며 남베트남과 베트공의 이야기이자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저 살고자 몸부림치던 일반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안영규 상병이 목숨을 걸고 싸우던 정글에서 벗어나 다낭 합동수사대 (CID)로 전출 명령을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군에서 지위보다 직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병과에 근무하냐에 따라 일하는 환경이 크게 다른데 안영규 상병이 일하게 된 합동수사대는 다낭 그랜드 호텔을 사무실로 쓰고 사복을 입고 다낭 시내를 돌아다니며 미군부대 PX (군인 면세점) 및 검문소를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한 달 20 달러의 돈을 벌기 위해 목숨 걸고 정글을 기어다니던 시절과는 딴 판인 세상에 근무하게 된 안 상병이 합동수사대에서 하는 일은 암시장인 블랙마켓을 감시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 당시 베트남을 원조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물자를 통해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물자는 미국의 잉여자원을 주거나 미군이 전쟁 물자로 필요한 무기, 의약품 등과 담배나 맥주와 위스키 등의 기호식품, 식량 등의 필수품 그리고 일본 전자제품으로 이뤄진 것들이었는데 눈먼 돈이라고 이런 면세 제품들이 암시장에 풀려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잡는게 그의 일이었다.

 

소설은 암시장을 둘러싼 이 네 부류, 한국군, 미군, 부패한 월남 장교, 민족해방전선의 시선에 따라 각자의 이야기가 한데 담겨진다. 안영규와 토이는 한 팀이면서 한국과 베트남의 입장을 대표하고 미국이 풀어놓은 원조물품에 네 부류 모두 각자 빨대를 꽂으며 이익을 나누는 암시장에서 핵심인 무기 거래는 베트남 신거주지촌을 중심으로 베트남 민병대와 민족해방전선 (NLF) 양쪽 모두애개 흘러들어간다.

 

이렇듯 미국의 원조 및 보급 물자는 미군, 한국군, 남베트남 부패한 군 관리 및 돈을 쫓는 상인들과 민병대, 민족해방전선, 미군에 의해 돌아가는 기지촌 사람들로 찢어져 돌고 도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고 안영규 상병과 짝을 이룬 토이는 이런 암시장에서 벌어지는 거래에 대해 조사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무수히 많은 비리를 접하게 된다.

 

또한 베트남 가족 내 형인 팜 꾸엔 소령은 남베트남군의 부패한 군인, 동생 팜 민은 의대를 자퇴하고 민족해방전선의 게릴라가 된다. 이런 가족상은 비단 그들 형제만의 문제가 아닌 베트남 대부분의 가정의 현실이었다. 누군가는 남베트남 정부 편에 다른 누군가는 민족해방전선의 편에 섰다. 양쪽 중 한 쪽에 서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그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형은 온갖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돈을 벌어 해외로 나가 살고 싶어하는 인물이었고 동생은 그런 형을 비열한 인간으로 취급하지만 그를 이용해 장사를 배워 돈을 벌겠다는 변명을 대고 민족해방전선에 무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 첩자 역할을 맡게 된다.

 

안영규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와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곧 있음 제대하고 떠나면 이 곳의 모든 일들과 사람들을 잊고야 말겠다며 다짐을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 문제는 베트남 사람들끼리 처리하길 바라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뿌리 내리려는 미국은 이를 반대하는 그 어떠한 세력에게 불법적인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물리쳐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 한다.

 

전쟁속에 승리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한국군을 도와 정보원으로 일하는 토이의 죽음이나 젊은 나이에 해방투쟁 운동에 첩자로 나서 죽게되는 팜 민이나 나라보다 개인과 가족을 위해 일하던 팜 꾸엔 역시 자신이 원하던 바를 얻기 기 전에 죽는다. 수 많은 이들의 피를 흘려서야 결국 베트남 전쟁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승리로 돌아가지만 철저히 파괴하며 잔인하게 유린하던 미국의 폭력은 그토록 자유주의 경제를 뿌리내리고자 했던 미국의 노력은 지금와서 보면 헛된 것만도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참고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미군이 철수하던 1973년까지 이뤄졌으며 참전한 군인은 32만명에 달했다.

 

무기의 그늘을 읽고 있자면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그대로 오버랩 되는 듯 하다. 또한 우리가 겪었던 아픔을 우리 군이 참전해 그들에게 그대로 서구의 방식으로 유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가 받은 아픔은 알아도 우리가 준 아픔은 기억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아픔을 준 그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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