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고양이가 들려주는 잘난체하는 인간들

2020. 3. 31. 07:53문화/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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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엔권 초상 (1984 - 2004년)에도 사용되었을 정도로 일본에서 국민 작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100년이나 지났음에도 세상은 변했지만 사람들의 행태는 여전히 그대로인 듯 하다. 예전에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책을 다시 펼쳤다.

 

 

소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없다.

 

이름 없는 고양이. 한낱 쥐도 잡지 못하는 아무 쓸모도 능력도 없는 것으로 취급받지만 자신의 주인인 선생,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고양이의 눈으로 사람들과 당시의 세상을 들여다봤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잘난체 하는 인간들에게 날리는 조소를 통해 인간의 행태가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러운지를 고양이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소설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꽤 자신을 사실적으로 잘 드러냈는데 자신을 비롯해 소위 배웠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허세를 경멸하며 마음껏 비웃어 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내용은 그닥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각주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하나하나 그 내용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찾아 읽다보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어 나중에는 각주를 그냥 무시해버렸다.

 

우선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약간의 역사적 사실을 말하자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문화가 대세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작가 본인이 갖는 비판의식이 싹 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나쓰메 소세키의 개인적인 역사와도 맞물리는 내용이기도 하다.

 

나쓰메 소세키는 33세에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영문학 연구를 위해 국비유학생으로 2년 간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

 

 

돈을 버는 데도 삼각법을 써야만 한다는 거야. 의리가 없고 인정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것, 이것이 삼각이 된다는 거네.

훌륭한 부모가 지금 세상에 맞도록 솜씨 좋게 낳아주면 그게 행복이지만, 그렇게 안 되면 세상에 맞지 않은 채 참든가 아니면 세상이 맞춰줄 때까지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겠지.

 

중심에 들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지식인 (교양인)들이 모여 이런저런 시대적 상황 및 세태를 비판한다. 장사꾼을 파렴치한으로 하찮게 여기고 돈을 속물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멀리하지만 정작 그들 또한 그들 또한 말만 번지르할 뿐이지 대체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다.

 

그저 먹물 좀 먹은 지식인입네,하며 잘난척 허세만 떨 뿐이지만 고양이는 그런 인간들의 허와 실을 제대로 꿰뚫어 본다.

 

'세상에는 못된 짓을 하고서도 자신은 어디까지나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자부하는 일이니 순수해서 좋기는 하지만, 남이 난처해하는 사실은 아무리 그것이 순수하다고 해도 없는 일이 될 수는 없다.'

 

영어 선생 구샤미를 통해 자기비판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 교양인의 허와 실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100년이나 지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음에도 인간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별로 없어 보인다.

 

천하에 가장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고들 하는데, 아직 먹어보지 못한 것을 먹고,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 만큼 유쾌한 것은 없다.

 

100년 전에도 여행 (유랑)과 먹방이 최고였다,는 사실에 강한 공감을 표한다. ㅎㅎ

 

이름 없는 고양이를 통해서 인간들의 잘난체하는 모습들을 통찰하며 꽤 유쾌하게 지내다 2년 간의 삶을 끝으로 죽으며 '죽어 태평함을 얻는다.' 라고 썼으니 현실의 삶에서 쓸데없는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고상함 보다는 근본적으로 허무한 인생, 고양이처럼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야 한다, 또는 작가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600 페이지가 넘는 꽤 긴 장편 소설이지만 시대가 바뀌었어도 고양이보다 못한 집사들의 허세를 통해 인간사 쓸데없이 지적질이나 하며 잘난체하기보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즐겁게 살다 가야겠다,는 생각 가져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도 즐거운 인생,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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