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개를 돌봐줘 - J. M. 에르

2018. 2. 2. 05:26문화/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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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 읽는 남자입니다.


'집 밖은 위험해' 아주 추운 주간이었던 심지어 주방 싱크대 수도가 얼어 물이 안 나와 화장실에서 설겆이를 해야했던 이 추운 겨울에 '의외성'이라는 키워드로 가득한 책 한 권을 읽으며 이걸 끝까지 읽을까? 접고 다른 책을 잡을까 고민하게 만든 프랑스 소설입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먼 북쪽이라는 책을 일본어 판으로 번역하게 된 사연을 쓰면서 책에 대해 '무엇보다 의외성에 가득 차 있다. 내 생각에 소설에서 의외성이란 무척 중요하다.'라고 썼습니다.


그런 면에서 [개를 돌봐줘]이 책은 서스펜스 소설인가요? 


제게 있어서 '소설의 의외성'이 가득한 책 한 권을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라고 한다면 세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입니다. 사실 책을 좋아하면서도 아닌 듯 한게 세라 워터스를 통해 알게 된 소설이 찰스 디킨스의 <오래된 골동품 상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알게 된 작가가 위대한 작가 '찰스 디킨스'겠네요.


저는 아직도 찰스 디킨스의 소설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를 다 읽고 리뷰를 거부한 적이 있었는데 J. M. 에르의 <개를 돌봐줘> 역시 비슷한 초반 느낌에 이 유쾌하면서도 어딘가 모호한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우선 다중화법을 사용하는 이 책은 서스펜스임에도 범인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어서 <서스펜스> 장르로 넣기에는 이상할 듯 싶어요. 그냥 유쾌하면서도 경쾌한 살인 사건을 주제로 한 소설임에는 틀림없고요.



작가분께서 <개를 돌봐줘> 책 안에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소설의 진정한 서스펜스는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바로 이 질문에 있다.

'저자는 과연 제대로인가?'


음! 이중 반어법? 뭐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꽤나 유쾌한 소설입니다. 다중화법이라는 그렇게 참신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화법의 전환을 통해 '코른누르'와 '플뤼슈'에 대한 어설픈 오해가 어떻게 이어져 가는지는 꽤나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그럼 몇몇 인상깊었던 책의 내용에 잠시 빠져 보겠습니다.


행복과 공포 두 용어의 결합에는 미묘한 모순이 존재하죠. 아이러니는 바로 그 괴리에서 탄생합니다.


브뤼노의 경우 매주 함께 지내는 건 그나마 좋은 면이 있긴 하다. 전에는 외롭다는 느낌에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작정을 하고 씻지도 않는다. 

전에는 자식이 없는 것을 아쉬워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거리에서 아이들을 보면 발길질부터 해댄다.

전에는 휴머니즘이 개인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오히려 채찍질을 권장한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을 아주 잘 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상황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또 뭐가 있을까?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발명될 뿐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죄인 하나하나는 자기 삻의 소설가다.

진실 따윈 조금도 중요치 않다. 그것을 찾는 사람들 마음에 들기만 한다면.


가스파르는 자신에겐 도통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반복해 말하지만, 나는 그가 제법이라 생각한다. 내 생각에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감의 문제이다.


우리는 얼토당토않은 것을 믿기도 한다. 왜일까? 왜냐하면 우리가 상대방이 하는 말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부여하는 신뢰도 지수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굳이 불편한 프랑스식 철학과 깊이에 대한 사고를 할 필요없는 경쾌함은 이 책의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무척이나 유쾌한 소설입니다. 살인이 난무한 소설인데도요!


다시 한 번 작가가 쓴 책 속의 글을 통해 밝힌 바를 다시 써봅니다.


소설의 진정한 서스펜스는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바로 이 질문에 있다.

'저자는 과연 제대로인가?'



유쾌한 소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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