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실내 여행 이중섭미술관, 제주 추사관

2018. 5. 23. 13:39톰군/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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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이중섭 미술관, 제주 추사관, 제주 국립박물관, 민속박물관, 저지문화예술인마을 등을 방문하였는데 그 중에 이중섭 미술관과 제주 추사관을 소개해드릴게요.


- 이중섭 미술관 -


이중섭 문화거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이중섭 생가 및 공원과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꽤 많은 여행객들이 이중섭 생가와 공원 등을 걸어다니며 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누며 거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 이중섭 생가 -


이북 출신인 고 이중섭 화가는 남북 전쟁 때, 가족들과 부산으로 피난 와 서귀포로 거처를 옮겼다 합니다. 그의 제주 생가는 넓은 앞마당에 비해 방은 무척이나 협소합니다. 빈곤한 예술가로 살았던지 1년여의 제주 생활을 끝으로 부산 범일동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주에서의 생활은 1년여가 다인데 처음에는 1년 고작 위대한 예술가가 살았다고 제주 이중섭 미술관까지 갖다 끌어서 제주에서 빛낸 인물로 꾸며 관광지 하나 더 만드는 건 무리수가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고작 1년여의 시간이지만 제주에서의 보내는 동안 그의 창작 활동이 빛을 발했다니 영감을 준 제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1916 ~ 1956 -


우리 기억에 안타까움으로 남는 위대한 예술가 등은 그 짧은 생애 때문에 더 아쉬움이 남나봅니다. 영양실조 등으로 1956년 생을 마감했다는데 천재 예술가의 빈곤한 삶을 보니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의 넓고 호적한 저택들의 예술인 마을 집들이 떠올라 여러 생각이 교차하더라고요.



- 이중섭 미술관 공원 벽에 그려진 게 -


이중섭 미술관의 그림이었나 판화였나 음.. 사진을 안 찍어놓으니 벌써 기억에 이렇게 빨리 사라지네요. ^^''


여튼 게를 테마로 한 작품이 꽤나 많습니다. 아마도 제주도에서 머물며 게를 보며 영감을 얻은것일테지요. ^^



이중섭 미술관 전시실은 나중에 제주 관광지순환버스 가이드 분 얘기를 들어보니 전시 내용은 계속 바뀌나 보더라고요. 제가 갔을 때는 1층에 전시실에 게를 중심으로 한 제주에서 그린 그림 등을 전시하였고 2층 일부는 4.3 관련 내용들도 전시되었어요. 3층은 옥상으로 위에서 송산동 일대와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 이중섭 미술관 옥상에서 -


관람시간 및 입장료 안내입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500원입니다.




- 제주 추사관 -


제가 머물고 있는 덕수리와 가까워 더 방문하게 곳이에요. 주변에 산방산과 산방탄산온천 등이 있는 곳이죠.



- 세한도 -


솔직히 추사 김정희 선생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엄청난 글씨체 대가라는 점이에요. 그나마 아는 작품이라면 위의 세한도이지요.


제주 추사관에 가면 당연히 세한도에 대한 작품을 보실 수 있는데 해석이 눈에 더 다가왔어요. 


지금껏 <새한도>는 이상적인 신의에 방점을 두고 해석되었다. 송백은 여느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그러다 보니 그림은 관념적으로 치우쳐 이해되었다.

하지만 추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 보다 더한 실존과 사실을 그린 것도 없다. 고갱이만 남은 고송은 풍상고절을 다 겪어난 자신이다.


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소위 금수저 출신입니다. 왕실과도 친인척 관계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그의 증조부는 영조의 사위였습니다. 대단한 권력가 집안 출신인 추사 김정희 역시 문과에 급제해 승승장구하며 보냈습니다. 당쟁이 심화되고 외척이 정권을 잡으며 조선 왕실의 기강이 무너지던 시절 아버지의 죄에 다시 연류되어 제주도로 귀향을 떠납니다. 


무려 9년간의 유배였으며 그 당시 제주 유배는 죄 중에서도 무거운 죄에 속했던 때라 그리고 제주 시내가 아닌 서귀포 쪽으로 유배를 보냈다는 건 더욱 강한 문책을 받은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 그가 제주 유배시절 그렸다는 <세한도>는 어쩌면 그의 정치적 세계관인 보수적이며 이상적인 신의가 아닌 그의 당면한 현실 속 세찬 바람과 막막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절박함에서 그린 실존과 사실을 나타낸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무량수각 -


해남 두륜산 대둔사(대흥사)에 있다는 무량수각입니다. 전에 해남여행을 갔을 때 해남땅끝마을과 전망대를 보고 고산 윤선도 유물 전시관을 갔을 때 잠깐 들린 대둔산에 위치한 곳이라 더욱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제주로 유배를 떠났던 중에 대둔사 (대흥사)에 들렸다 써준 예서처 현판이라 합니다. 




- 다산초당 -


제가 제주 추사관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추사 김정희 선생을 꽤나 보수적인 노론의 인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색깔은 노론의 권세가 집안답게 보수적인 인물인건 맞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는 다수의 실학파 인물과도 교류하며 정치 외에는 실학적인 세계관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 김정희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아들 정학연, 정학유와 깊이 사귀며 시를 짓교 친교를 맺었다 하며 강진의 다산초당의 현판 글씨를 부탁하자 써준 것이 바로 보이는 <다산초당>입니다.


영화 취화선을 기억하시나요?


- 출처 다음 영화 -


천민 화가 장승업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 추사 김정희 선생에 대해 약간 나옵니다. 물론 같은 시대의 인물은 아니고 장승업이 살던 시대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절대적인 룰과 지침이었던 시대였던것이죠. 영화에서는 그 틀을 깨고 탈피하려고 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최소한 제 흐릿한 기억속에는 그런 내용인데 그래서인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출신배경과 권력가 집안에서 태어난 왕실의 내척인 인물. 글씨체의 대가로서 보수적인 인물로 기억되었는데요.


이번 제주 추사관을 방문하고서는 김정희 선생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되네요.


참고로 제주 추사관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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