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4. 02:40ㆍ톰군/국내여행
마땅히 내일 뭘 봐야지, 뭘 해야지 이런 계획을 하나도 세워두지 않고 그날그날 생각나는 곳을 검색해서 카카오맵을 켜서 위치를 확인한다음 가는데 이 날 지방의 대중교통의 무서움을 제대로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천지연 폭포를 갈 때 조금 더 빠른 버스를 타려고 사전 정보없이 내렸다 한 시간에 한 대 다니는 버스를 만나 다시 환승을 거듭하는 어리둥절 버스를 경험했는데 그나마 천지연 폭포는 중문으로 가는 길,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과 서귀포 시내로 가는 길 등을 거치므로 대부분의 버스가 그 길로 향하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지오름은 내가 머무는 덕수리에서는 동광환승센터로 가서 갈아타던가 인성리로 가서 갈아타면 되는데 마침 동광환승센터로 가는 버스를 놓쳤던지라 반대로 도는 산방탄산온천, 추사 김정희 유배지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조금 더 빨리 오는 버스를 골랐는데 그게 화근일줄은 탔을때만 해도 몰랐다.
인성리에 내려 버스를 기다리는데 당연히 언제 온다는 버스 정보는 안 뜨고 정류장에서 초록색 지선 버스를 보니 1시간 20분에 한 대 다니는 버스 ㅠㅠ 앗! 머리 아프다. 다행히 아직 제주 여러 지역을 다닌게 아니라 쇠소깍으로 바꿔 갈까? 고민을 한참 하였다.
그러다 인성리 정류장에서 조금 더 걸어올라가면 다른 버스들이 더 다니는 곳이 보여서 그리로 갔더니 다른 분께서 내게 제주 버스터미널 가는 버스가 언제 오냐고 물어보는데 ....... 아~ 버스 어렵다.
그렇게 기다리다 운 좋게 30분 만에 신평리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정말 운좋게도 820번 관광지 순환버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사실 타기 전만해도 이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는 올려나 하는 걱정으로 신평리를 갈 수 밖에 없었다.
820번 관광지 순환버스는 노랑색 관광버스 같은데 처음에는 내가 이 버스를 타는게 맞나 또 한 번 어리둥절에 빠지게 되었다. ^^''
관련글 : 독거인의 행복한 일상 - 도보여행자를 위한 제주도 대중교통 이용법
- 봉's Farmer -
아직은 어리둥절 제주의 대중교통의 미로를 느끼며 관광지 순환버스에서 가이드 분을 통해 여러 관광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동광환승센터가 서귀포에서 제주공항과 제주버스터미널로 가는 또는 중문과 운진항 (모슬포항)으로 가는 가장 버스가 많이 다니는 육거리임을 알았을텐데.
저지오름으로 가는 길을 헤매는 탓에 동광환승센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초보 여행자,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가 남들 다 아는 것을 이제 하나 알게되니 세상에 눈을 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그렇게 1시간이면 가는 저지오름을 1시간 30분 이상 걸려 내려 시장기를 느껴 둘러보니 저지오름 입구에 봉's Farmer에서 돈까스를 판다고 하여 갔더니 5월 중순 이후에나 하고 지금은 쥬스나 커피만 판단다. 보니 커피숍과 파머라는 이름을 쓰는 것 보니 천혜향 등을 파는 듯 했다. 바로 앞 가게도 천혜향을 파는 곳이었다.
먼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고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장면을
온몸으로 느낄 줄 알아야겠지
계절이 지나 입지 못하는 옷들은
계절이 오면 다시 걸칠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시 걸어오지 않으니까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자리에 일어섰다. 향기로운 커피 향이 먼저 다가오고 마시면 텁텁하면서 쓴 맛을 차가운 물 한 잔으로 지워본다. 남는 건 감도는 향 뿐이다.
들어온 길 뒤로 나가면 저지오름 바로 입구다. 그래 걸어 올라보자.
헉~ 헉~ 헉헉헉~ 마지막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평지를 걸을 때는 나뭇잎사귀의 푸릇함과 새소리의 지저귐이 그리 반갑더니 오르고 또 올라가니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역시 배 나온 사람은 평지는 어떻게 걸어도 오르는 길은 쥐약이다. ^^''
저지오름 높이가 239.3m라는데 뭐 이리 높아? 꽤 높은 산을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릴것 같아 벌써 걱정이었다.
저지오름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인 생명상을 받은 오름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상에 오르니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올라올 때도 사람들을 봤으니 지금껏 오른 몇몇 오름 중에서는 새별오름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이었다. 그 다음 오른 제지기 오름 때는 오르고 내려가는 동안 딱 한 팀을 봤으니까 말이다.
숨이 차 올라왔지만 그래도 정자 위 전망대에 올라 미세먼지인지 안개로 뒤덮힌 경치를 살펴봤다. 흐려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사방이 탁 트인게 나쁘지는 않다. 사실 오르면서 자연과 함께 하는게 좋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거문오름이나 새별오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게 전망대 위에서 한참을 둘러보고 내려와 정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앉아있는데 분화구 길에서 어느 여자분이 올라오고 있었다. 전망대 위에 여자분이 큰 목소리로 말을 거는것 보니 둘이 일행이었나 보다. 난 잠깐 읽던 책을 덮고 그 여자분을 향해 눈을 돌렸다. 사실 분화구로 내려가 그 길로 내려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는데 저지오름을 힘겹게 찾아왔는데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사실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아 분화구까진 보고 가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자 쪽으로 오는 그 분에게 분화구쪽으로 올라오시냐고 물어보며 혹시 그 길로 내려가는 길이 있냐고 했더니 없단다. 사실 그 분도 호기심으로 내려갔는데 꽤나 오르는 경사가 높아 힘들게 올라와 한 번 분화구 본 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그래도 새가 여기저기서 지져겨 꽤나 신비스러운 느낌은 들어 한 번은 가볼만하다고 한다.
그래. 그래. 그럼 가야지!
저지오름까지 와서 분화구는 보고 가야지 하며 책을 덮고 가방에 넣어 내려갈 차비를 했다.
내려가며 보니 꽤나 오래 경사가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 길에서 만난 아저씨분이 힘겹게 올라오고 계셨는데 나중에 올라올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ㅎㅎㅎ
- 저지오름 분화구 -
저지오름 분화구는 25~20만년전에 형성된 원형의 분화구라고 한다. 제주 대부분 오름의 분화구는 이런 형태인데 거문오름 해설사 분이 알려주셨다. 거문오름 분화구가 더 큰데 분화구라고 하니 움푹파인 곳이라 그런줄 알지 풀과 나무 등으로 뒤덮여 세월이 흐르며 이 곳은 분화구 형태만 남아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소리가 고요한 곳에 홀로 울려퍼지니 꽤나 신비스러운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자, 이제 한참을 구경했으니 올라야지. ㅎㅎㅎ;;; 아까 내려오는 길에 올라오던 아저씨 분이랑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계단수가 300 몇 십 계단이라고 했나? 이제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아까 저지오름 정상을 오르며 뒷다리와 허벅지가 아파왔는데 또 올라가야 하니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걸어올랐다. 영차영차~ 힘들다ㅠㅠ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길을 걷다 우연히 벽에 그려진 고은 시인의 시이다. 미투 얘기는 여기서 뒤로하기로 하고 벽에 쓰여진 그 글귀가 산, 오름 등을 오르며 보지 못한 것들을 내려올 때 발견하며 고은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