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2018. 2. 26. 17:46톰군/서울 주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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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들어가본다.


(정보)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클릭하시면 입장료 및 관람시간, 휴무일 관련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위치) : 서대문형무소  <-- 클릭하시면 네이버 지도로 연결됩니다.


1912년 서대문 감옥 - 1923년 서대문형무소 - 1946년 경성형무소 - 1950년 서울형무소 - 1961년 서울교도소 -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꾸다 1987년 의왕시로 이전되면서 1998년 이 곳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재탄생됐다. 


해방이후에도 독립 열사들의 한서린 죽음이 깃든 이곳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못하고 계속 감옥으로 사용한 우리의 정치인들이 역사적 몰이해와 무능이 안타깝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 -





2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삼일운동 100년을 기억하며 우리 열사들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옥사를 치루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죽거나 고생을 하였다.


따듯한 햇살이 봄을 알리는데 과연 감옥에서의 겨울은 어떘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봄이 올 때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


당신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슬픔도 분노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중에서 -


원래는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시의 한구절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12옥사 먹방 (독방) -


유시민씨의 '항소이유소'는 위의 0.7평의 독방에서 썼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독립운동 열사들은 위의 먹방으로고 불리는 독방에 수감되었다. 독립운동 열사들은 밥의 양도 다른 수감자들과 달랐다고 한다.




- 남옥사에는 각 월의 독립운동가들이 소개되고 있다 -


모든 월의 독립운동 열사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어서 몇몇 분들의 독립운동가 분들을 찍었다. 저 위 사진에 보이는 자그만 창문 넘어로 보이는 옥사에 40명 가까이 수용되었다 하니 얼마나 수형생활이 비참했을지 가히 상상이 되고다 남는다.



쇠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 보호 순사까지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악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 했습니다.

어머니!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항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세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 심훈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



감옥 주의 사방 산에 눈이 잔뜩 쌓였는데

쇠처럼 찬 이불 속에서 꾸는 꿈은 싸늘하네

쇠창살도 꽉 닫히지 않는 틈이 있는 탓에

한 밤중에 어디선가 찬 소리가 들려오네

- 한용운 [눈오는 밤] -





- 수인복 -



-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 -


이 곳 입구에 보면 안에서는 정숙하고 사진을 찍지 말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내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 대형 DSLR 카메라를 가지고 떡하니 계속 사진 찍기 바쁘시다. 제발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하지 말자. 역사의식이나 정치의식은 무척 높은데 시민의식은 여전히 아시아에서도 아주 높다고 말하기 어렵다.


찍지 말고 조용히 관람하라고 써있음에도 연인은 서로 손잡고 계단을 오르느라 다른 이들의 통행에 방해를 주고 아이들은 떠들기 바쁘고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을 말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아주머니를 포함 몇몇 분들은 사진찍기 놀이에 빠져 '준중 및 배려'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 한센병사 -


(정보) : 한센병  <-- 클릭하면 [한센병] 관련 두산백과로 연결됩니다.




- 서대문형무소 순국선열 추모비 -




- 통곡의 미루나무 -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당시 심었다고 한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전해져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미루나무는 지금 보이는 사진과 같이 밖에 한그루, 또 안에 한그루가 있으나 사형장 안의 미루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그루터기 일부만 남아있다. 사형장 안은 사진촬영 금지라 찍지 않아서 외부 미루나무만 올리도록 한다.




- 사형장 -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 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 강우규 의사 [절명시] -




- 격변장 -


격변장. 수형자들을 격리하여 운동시키는 체육시설이라고 한다. 실제 사진을 찍어보니 무척이나 협소하다.





태극기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글썽거려진다. 애써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여옥사로 향해간다. 


여옥사 밖에는 여성 독립운동 열사들의 모습이 그려져있는데 조마리아 열사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님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되었다.



- 유관순 열사가 투옥헸던 8호감방 -




- 삼일독립운동 만세 -


남녀를 안 가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많은 분들이 희생을 하였다. 말이야 쉽다만 과연 내가 그 시대로 돌아가 그들과 같이 할 수 있을까?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말이 내 가슴에도 여전히 뛰고 있을까? 과연 그들과 같은 용기가 있을까?




- 서대문구의회 -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이곳에 온다고 크게 플래카드를 걸어뒀다. 대한민국 의회 수준이 이 정도다. ㅎㅎㅎ


올해는 삼일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99주년, 100년이 되는 해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고작 1~200여미터 떨어진 서대문구의회다. 어여 고치길 바란다.




- 낮달이 떴다 -


낮달 : 낮에 뜨는 달





-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나오며 -


자주 독립을 못한 죄. 그로인해 남북이 분단된 죄.


그게 죄라면 죄랄까. 독립운동 순국선열들에 대한 평가나 후손들의 대우가 너무나 형편없다. 그에비해 친일들의 평가나 그 후손들의 번영이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딜레마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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