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서대문독립공원

2018. 2. 26. 15:53톰군/서울 주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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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삼일운동은 100년 (99주년)을 맞이한다.


1919. 3.1. 삼일운동 (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1919. 4. 13.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대내외에 공식 선포하게 된다. 우리는 자주적 독립을 마련하지 못하여 남북 분단을 겪는 세계사에서도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자주 독립의 꿈을 향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많은 독립운동을 전개해 대한제국의 정기를 이어나갔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수많은 열사들이 죽음을 당했다.


관련글 :  상하이 신천지와 인민광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 듯 누그러진 날씨가 이어지면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지만 그마저도 조금은 약해진 일요일. 아쉽게 진 여자 컬링 경기를 응원하고 자리에 일어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하기로 해본다. 특히 올해 100년을 맞이한 삼일운동 (독립만세운동)이기에 더더욱 방문하고 싶어졌다.


(위치) : 서대문독립공원  <-- 클릭하면 다음 지도로 연결됩니다.



- 독립공원에 위치한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하려고 간 길인데 나중에 보니 <독립문 역>에 위치한 곳이어서 독립공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독립공원에는 독립문과 삼일 독립선언 기념탑, 독립문 현충사가 있다.




- 독립문역에 태극기 변천사 -


독립문역에 내리면 태극기의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태극기의 시초는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방문고종황제의 허락을 받아 배안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태극 문양의 방향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고 하여 여러 얘기들이 많다. 어제 친구랑도 잠시 메신저로 이와 관련 대화를 나눴는데 여기서는 그 얘기는 그런 의혹이 있다 정도로만 알려드리겠다.




민족의 독립 (독립문역 5번 출구)


한국은 작고 오랜 역사기간 동안, 중국의 사대관계를 가졌으나 역사 및 문화 전통은 고유의 것을 그대로 계승하고 지켜왔다. 그러하기에 일본에 의한 침략은 우리의 역사적 자존을 뭉그러뜨리는 일이었으며 이런 역사적 자긍은 36년의 치욕동안 민족의 독립 운동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안산 자락길로 연결되어 있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걷는게 가장 좋단다. 무려 70% 감소를 한다는데 이는 아버지를 봐도 그럴 듯 하다. 아버지는 5년 전에 뇌경색이 오셨다. 그렇게 쓰러지시고 일어나시지 못하셨는데 수술을 안 하시고 여러 치료 등으로 다행히 일어나셨다. 물론 뇌경색으로 인해 일상적 대화가 거의 안 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일어나신 뒤 매일 엄청난 걷는 운동을 통해 다른 큰 이상없이 현재까지 건강하신 편이다. 아버지의 연세는 90이 다 되가신다.




- 삼일 독립운동 기념탑 -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33인의 민족대표는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하며 거족적인 삼일독립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1963년 8월 15일 국민의 성금으로 탑골공원에 건립되었으나 1979년 탑골공원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었다. 각계에서 복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서울시가 1992년 항일 독립운동의 터전인 이 곳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세웠다.




- 독립문 현충사 -


독립 순국선열들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




- 송재 서재필 동상 -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서재필 선생은 1896년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윤치호, 이상재 등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다. 


1919년 삼일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작년에 보성 여행을 다녀왔는데 서재필 기념공원을 방문하진 못했네요. 다음 보성여행에는 꼭 들려봐야겠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삼일 독립운동 기념탑과 독립문이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있습니다.


1. 삼일 독립운동 기념탑에서 바라본 독립문

2. 독립문 앞에서 바라본 삼일 독립운동 기념탑




- 독립문 -


참고로 1919년 3월 1일 삼일만세운동은 내적으로는 우리에게는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맞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26년 6월 10일, 순종 (융희황제) 인산일 (황제의 장례일)에 610 만세운동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했다. 


1919년 3월 1일 삼일만세운동은 외적으로는 1919년 4월 6일 인도는 간디에 의해 비폭력-불복종 운동이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1919년 5월 4일 반제국주의의 54 운동이 일어났다. 삼일 운동이 이 두 운동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으나 시간적으로는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에 읽고있는 [신도 버린 사람들 - 나렌드라 자다브]에서 인도의 비폭력-불복종 운동이 여러 군데서 나와서 우리의 삼일운동 관련해서 여러 얘기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역사적 순서를 잘몰라서 처음에는 인도의 민족지도자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이 우리의 삼일만세운동에 영향을 주었나? 또는 받았나? 궁금했었는데 적어도 시간적으로는 우리가 선도적 역할을 했다고 하니 영향을 받지는 않았고 오히려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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